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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홀한 경주 100m: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황홀한 경주 100m: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학자들은 인간의 한계를 추정하기 위해 동물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연구를 한 바 있다. 데니(Mark Denny)라는 생태학자에 의하면 달리기의 대표적 동물인 말과 개의 한계는 이미 1970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을 한 경마의 기록은 지난 30년 동안 거의 변동이 없다. 그러나 프랑스 스포츠과학연구소(IRMES)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아직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어, 1896년부터…


  • 황홀한 경주 100m: 우사인 볼트

    황홀한 경주 100m: 우사인 볼트

    번개 같은 사나이   9만 명의 관중이 숨을 죽이고 한 사나이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2008년 8월 20일, 세계의 명물 베이징의 올림픽 주경기장은 심해와 같은 정적에 쌓여 있었다. 같은 시각, 20억의 세계 TV 시청자들도 과연 누가 올림픽 100m의 패자가 될 것인가를 보기 위해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탕하는 출발 총성과 함께 8명의 결승주자들이 일제히 튕겨나갔다.…


  • 황홀한 경주 100m: 육상의 전성기

    황홀한 경주 100m: 육상의 전성기

      육상의 전성기   전천후 트랙의 등장, TV의 보급, 스타팅 블록의 개량, 맞춤 신발 등 육상의 기자재가 계속 개선되고, 1974년에는 올림픽 현장에서 아마추어라는 용어가 삭제되면서 프로와 아마의 구분까지 없어지자 육상경기를 비롯한 스포츠의 모든 종목에서 눈부신 발전이 거듭되었다. 특히 1981년 IAAF에 이탈리아 출신의 새로운 회장 프리모 네비올로(Primo Nebiolo, 1923~1999)가 취임하면서 육상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법학과 정치학을…


  • 황홀한 경주 100m: 격동의 시대

    황홀한 경주 100m: 격동의 시대

      격동의 시대   6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60년대 후반으로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세계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이 폭풍의 20여 년 동안 프라하의 봄은 소비에트 전차에 무참히 짓밟히고(’68),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 착륙에 성공하고(69),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고(78), 80년 모스크바와 84 LA올림픽이 공산권과 민주진영이 번갈아 참가를 포기하는 바람에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고, 홍콩이 중국에 반환 되고(’84), 베를린 장벽이…


  • 황홀한 경주 100m: 10초의 벽

    황홀한 경주 100m: 10초의 벽

      10초의 벽   대망의 100m 10초 목표 달성은 1960년 6월 21일,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독일의 하리(Armin Hary)가 수립하였다. 그날 하리는 총성과 함께 출발부터 다른 선수들을 1미터나 앞서 나아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100m 10초 플랫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심판 중 한 사람이 하리가 부정출발을 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재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35분 후 경기가 재개되었는데 놀랍게도 앞서의 경기와…


  • 황홀한 경주 100m: 세기의 라이벌

    황홀한 경주 100m: 세기의 라이벌

      세기의 라이벌   1988년 9월 24일 오후 1시 30분,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의 8만 관중은 숨막히는 긴장 속에 100m 육상트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누구인가를 가려내는 100m 남자 결승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8명의 결승주자들은 출발선상에서 심장의 격렬한 박동을 진정시키며 출발신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8만 관중은 물론, 전 세계 수십억 TV 시청자들의 관심은 바로 미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