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의 벽
대망의 100m 10초 목표 달성은 1960년 6월 21일,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독일의 하리(Armin Hary)가 수립하였다. 그날 하리는 총성과 함께 출발부터 다른 선수들을 1미터나 앞서 나아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100m 10초 플랫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심판 중 한 사람이 하리가 부정출발을 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재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35분 후 경기가 재개되었는데 놀랍게도 앞서의 경기와 똑같은 10.0의 기록이 나왔다. 시간은 오후 8시 29분, 뒷바람 0.9m, 세 사람의 수동 계측 결과는 10.0, 10.0, 그리고 10.1 이었다.
이때 하리의 나이는 23세, 신장 182cm. 3개월 뒤에 열린 로마 올림픽에서도 10.2로 100m 우승을 했는데, 그는 최후의 백인 100m 세계기록 수립자가 되었다. 그리고 1932년 이래 줄곧 이 종목을 석권해온 미국을 28년 만에 처음으로 패배시킨 선수이기도 하였다.
취리히에서 최초로 10.0을 기록할 때 하리의 신발이 화제가 되었다. 1948년에 창립한 아디다스가 자기 나라의 선수인 하리를 위해 핀이 네 개 달린, 가볍고 튼튼한 맞춤 신발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유명 선수들이 맞춤 신발을 신는 게 일반화 되어 있지만, 이때의 아디다스의 배려는 특기할 만한 사건이며 맞춤 신발이 하리의 좋은 기록을 내는 데 기여했던 것이 틀림없다.
이제 사람들은 10.0초에 만족할 수 없었다. ‘어느 누가 최초로 10초의 벽을 깰 것인가?’,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까? 가 화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미국의 짐 하인즈(Jim Hines)가 마침내 10초의 벽을 무너뜨렸다. 독일의 하리가 10.0초의 기록을 세운 지 8년이 지난 1968년 6월 20일,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전 미국 선수권대회에서였다. 그것도 100m 결승에서가 아닌 준결승 1조 경주에서 9.9를 수립, 10초의 벽을 돌파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같은 조의 2위 로니 스미스(Ronnie Ray Smith)의 기록도 9.9로 세계신기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준결승 2조에서도 찰스 그린(Charles Greene)이 똑같은 9.9로 1위를 기록하였다. 결국 같은 날 100m 준결승 1, 2조 경기에서 불과 한 시간 사이에 무려 세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10초의 벽을 깬 것이다.
참고로 이 기록들은 당시 공식계측 수단인 수동시계로 측정한 것이다. 전동시계는 어디까지나 백업수단이었다. IAAF의 기록에는 전동시계로 측정한 참고기록도 병기하고 있는데, 하인즈의 기록은 10.03 스미스 10.14, 그린이 10.10 이다.
전동시계로 10초 벽을 깬 최초의 선수도 하인즈였는데, 그는 4개월 후인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결승에서 9.95를 기록하였다.
바람에 결과를 맡기는 여유
육상경기는 공정하고 순수하고 정확하다 못해 100분의 1초까지 따진다. 0.01초라니, 정말 숨막히는 얘기가 아닌가. 그래서야 어떻게 인간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바람에 대해서만은 육상이 그렇게 너그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놀랍게도 IAAF는 1936년 초속 2미터까지의 바람에 대해서는 기록계측 때 무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단거리와 멀리뛰기, 세단뛰기에서 뒷바람 풍속이 2m/sec 이내 기록은 공인기록으로 인정하나 그 이상일 때는 참고기록으로 한다는 것이다. 기록에 관한 한 그렇게도 인색한 IAAF가 어쩌자고 그렇게 후한 인심을 쓴단 말인가?
여러분 놀라지 말라. 일본의 고바야시(小) 교수는 100미터를 10.23으로 달리는 선수가 2m의 뒷바람을 받으면 약 0.18초의 기록이 단축된다고 하였다.
1/100초는 따지면서 바람이 일으키는 0.18까지의 오차는 눈감아주겠다? 도대체 무슨 오기인가. 그것은 오기도 아니며 인심도 아니다. 바로 여유란 것이다. 살벌한 경기에 그야말로 훈풍(風)이 부는 인간다운 여유이다. 왜 우리 조상들은 하필이면 따듯한 인간미를 훈풍에 비유했겠는가?
여유가 없으면 각박해진다. 각박해지면 남을 돌볼 겨를이 없다. 용서도 없다. 용서를 모르니 나밖에 없고, 내가 제일이다. 내가 제일이니 오만해지고 겸손도 모른다. 사람은 맘대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 때 겸손해지는 것이다.
따질 때는 1/100초까지 엄하게 따지되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의 뜻에 따라 결과도 맡기겠다. 얼마나 여유 있고, 멋있고, 인간미가 흐르는가? 그래서 육상경기는 격(格)이 있다 하였다.
참조 : 황홀한 경주 100m: 우사인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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