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학자들은 인간의 한계를 추정하기 위해 동물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연구를 한 바 있다. 데니(Mark Denny)라는 생태학자에 의하면 달리기의 대표적 동물인 말과 개의 한계는 이미 1970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을 한 경마의 기록은 지난 30년 동안 거의 변동이 없다.
그러나 프랑스 스포츠과학연구소(IRMES)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아직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어, 1896년부터 2008년까지의 세계기록 3,260개를 수학적 모델로 추적 계산한 결과, 2027년이 되어야 육상 경기종목의 절반 정도가 기록의 한계에 도달하고, 2060년이 되면 비로소 모든 종목이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미국 남부감리대학(Southern Methodist Univ.)의 생태학 교수인 웨이얀(Peter Weyand)에 의하면 100m 달리기 인간의 한계는 남자 9.48, 여자 10.19 이고, 그 시기는 2030년 전후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80년대 후반, 또 다른 학자의 계산에 의하면 2000년에 9.67, 2004년에 9.56, 2028년에 9.34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2000년도 최고기록이 9.79(모리스 그린), 2004년도 최고기록은 8.77(아사파 파월), 볼트가 2008년에야 베이징에서 9.69, 2009년 베를린에서 9.58을 세운 것을 미루어 볼 때, 현실은 수학적 계산보다 많이 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자의 경우 현재 최고기록은 10.49로 지난 20년간 기록 경신은 고사하고 근접한 기록조차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웨이얀의 예측은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육상 전문가나 학자들에 의한 남자 100m 한계는 대체로 9.5로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기는 앞으로 30년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우사인 볼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100m 한계를 9.7 초반, 잘해야 9.6 후반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볼트가 나오기 전, 하인즈가 10초의 벽을 9.95로 깬 1968년부터 2007년 파월의 9.74가 나오기까지 약40년 동안, 100m의 기록은 0.21 이 단축되었다. 그리고 0.21을 단축하는 데 7명의 선수가 10번(그 중 3명은 2번)에 걸쳐 기록 경신을 하였다. 결국 계산상으로는 1년에 0.005초, 매회 0.021초씩 단축된 셈이다. 이것은 단순한 계산치이지만 실제로도 세계기록 경신은 대부분 0.01 내지 0.02초에서 그쳤고, 최대 0.05초를 넘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볼트가 나오기 전인 지난 40여 년 동안 외부 환경(바람, 고도, 트랙 등)의 개선과 관계없이 순수한 인간의 기량이 얼마나 향상되었나를 살펴보면 매우 부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바람이나 고도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계기록이 나올 수 없었던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2미터의 뒷바람은 약 0.18초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지대 또한 육상 기록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즉 100m 기록이 10.3의 선수인 경우, 2,000m 고지에서는 평지에서 뛸 때보다 0.106초 빨리 뛸 수 있다고 하였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신기록의 홍수는 말할 것도 없이 2,240m라는 고도덕분이었다. 무려 9개의 개인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이 쏟아져나왔다. 단거리종목에서 신기록이 안 나온 종목은 남자 110m 허들, 여자 400m, 여자 80m 허들뿐이었다.
특히 1/100초를 다투는 100m를 보면 고도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실감 있게 느낄 수 있다. 1968년 짐 하인즈가 세운 9.95의 기록은 15년 후인 1983년 7월 3일 미국의 캘빈 스미스가 경신한다(배풍 1.4m에서 9.93). 그러면 왜 이토록 하인즈의 기록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가? 그것은 고지(2,240m)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스미스는 어떻게 그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나? 스미스가 기록을 세운 곳도 고도 2,194m인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미 공군사관학교였다. 결국 하인즈의 기록이 오래 견딜 수 있었던 것이나, 또 그 기록을 깰 수 있었던 것이나 모두 고지였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10초 벽 돌파 후 수립한 세계기록(타이기록 포함) 추이에서 보듯이 12회의 기록 중 그 절반인 6개 기록이 고지(1,000m 이상) 내지는 준고지(300m~1,000m)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초속 1.0m 이상의 뒷바람이 불 때 얻은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볼트 이전에 수립한 10개의 세계기록들은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된 결과라기보다, 대부분이 고지나 바람 같은 외부환경 요인에 의해 수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기록 향상이 꾸준히 계속된 것은 사실이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볼트 이전 40년 이상 9.7 내외에서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9.7 안팎을 100m의 한계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혜성같이 나타난 우사인 볼트의 등장으로 사정은 달라졌고 일반적인 예측도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이제 신세대 영웅 우사인 볼트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장과 기록의 관계를 관찰해보면 지난 50여 년 동안의 통계상 10초대 초반의 세계기록은 신장이 170cm 전후의 선수들에 의해서도 가능했지만, 9.50~1000초 사이의 기록은 신장이 180 이상의 선수들에 의해서만 수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9.00~9.50의 기록은 우사인 볼트의 예에서도 보듯이 신장이 190 이상은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최고의 고수
그러면 역사상 바람이나 고지의 덕을 보지 않고 기록을 세운 최고의 고수는 누구인가?
이것은 간단히 대답할 성질의 물음이 아니다. 오웬스, 하리, 하인즈 등의 옛 선수로부터, 근래의 그린, 파월, 타이슨 등 모든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같은 조건에서 승부를 가리기 전에는 최고수를 가려낼 길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 한 일.
따라서 모든 환경(전천후 트랙, 전동시계, 초경량의 신발, 초음파풍력계등)이 갖추어진 지난 20년 이후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이론적인 추정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날 일류 선수들의 기록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즉 10초의 벽을 돌파하기 전까지는 단신의 선수 가운데도 세계기록 보유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즉, 신장이 170인 톨란(Eddie Tolan, 10.4), 165 밖에 안 되는 일본의 요시오카 다카요시隆德, 10.3), 또 다른 165의 아이라 머치슨(Ira Murchison, 10.1) 등은 170cm 이하의 신장으로도 세계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68년, 10초 벽이 돌파된 이후에는 170cm 이하의 단신 선수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하인즈 이후 세계기록을 낸 선수들 중 스미스(178)와 그린(176) 외에는 모두가 180cm 이상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기록을 더 줄이려면 적어도 180 이상의 신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아사파 파월(190)과 우사인 볼트(196)는 190cm 이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연 장신의 이점이 있는 것인가?
파월은 4번의 9.70대를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의 기록은 공교롭게도 바람과 고도의 이점을 최대로 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볼트가 나오기 전 사상 최고기록인 파월의 9.74도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의 405m 고지인 리에티에서 배풍 1.7이라는 최상의 조건에서 수립된 것이다.
그렇다면 파월은 얼마나 외부 조건의 덕을 본 것일까?
전술한 노구치에 의하면 200m 정도의 고지에서도 100m를 10.00으로 달릴 수 있는 선수는 0.011초, 400m 고도에서는 이론상 0.022초나 기록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또, 배풍 초속 1.7m는 계산상 0.14초의 단축이 가능해지므로 파월은 외부조건에 의해 총 0.162초나 이득을 본 것이다.
만일, 파월이 그날 바람이 전혀 없는 평지에서 경기를 했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기록은 9.90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단신인 모리스 그린이 파월보다는 실질 실력이 앞서고 있다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그는 고도 138m, 바람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세계기록 9.79를 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상 최강자는 비록 이론상의 추론이긴 하지만 모리스 그린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이론상의 산지이므로 사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키가 큰 사람은 다리가 길다. 긴 다리를 남보다 빠르게 내디디면 빨리 뛰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파월이 같은 날 그린과 겨루었다면 그린이 꼭 이겼을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달린다는 것은 신경계, 근육, 골격, 두뇌 활동과 심리적인 요소까지가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생명체의 운동인 까닭이다. 그것을 기계의 성능 시험하듯 다룬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만일 파월이 그 큰 스트라이드로 그날의 피칭(Pitching)을 조금만 더 빨리 하였다면 그린의 짧은 다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통계상 180cm 이상의 키다리가 세계기록을 더 많이 세웠다는 것은 아무래도 장신이 유리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린이 176cm의 단신으로도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그의 특별한 자질 덕분이다. 그린이야 말로 역사상 최고의 고수였는지도 모른다.
참조 : 황홀한 경주 100m: 격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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