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달리기 신세대 영웅을 기대하며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180cm의 신장으로는 100m 달리기에서 대망의 9.5초대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10초 벽 돌파 후 신장 180 이하는 세계기록을 못 냈듯이, 9.5초대 진입을 위해서는 190 이상의 선수가 나와야 될 것 같다.
우사인 볼트 이전 세계기록 수립자 중 아사파 파월만이 유일하게 신장이 190이었다. 체중도 88kg으로 역대 최고였다. 그리고 역대 최고기록 9.74도 그가 세웠다. 챔버스(Dwain Chambers)는 9.72를 마크할 사람은 파월밖에 없다고도 하였다.
일본의 고베의과대학 교수 후루자와(澤)에 의하면 100m를 9.8로 달리자면 25.5 마력이 필요한데, 이 정도의 힘을 내자면 적어도 92.4kg의 체중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신장이 커야 하는 것은 물론 상당한 체중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파월이 사상 최고 기량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사인 볼트가 나오기 전 세계기록이 주로 0.02초 내외, 많아야 0.05초의 폭으로 향상되었던 중요한 이유도 파월과 같은 탁월한 신체조건을 갖춘 선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파월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파월이 2007년 100m 달리기를 9.74의 기록을 낼 때의 신체조건을 보면 스트라이드(Stride) 230cm, 스트라이드 수는 43.5, 스트라이드 속도(Frequency)는 4.47/sec였다. 만일 파월이 같은 스트라이드 속도에 스트라이드 수만 1보 줄인 42.5로 100m를 주파한다면 9.52라는 꿈의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 1보를 줄이기 위해서는 스트라이드를 230cm에서 5cm를 늘린 235cm로 하는 것이 순리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스트라이드의 폭은 보폭각(Stride angle)을 조금 늘리는 훈련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폭각을 주목하는 것은 좌우 다리의 허벅지 각도를 말하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것이 속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보폭각 매 1°는 보폭의 2%에 해당되기 때문에, 보폭각을 5°만 늘려도 보폭은 10%가 증가된다는 말이다. 가령 A가 B보다 보폭각이 5°가 크다고 가정하면, A가 매스텝을 뗄 때마다 A는 B보다 10%씩 보폭이 늘어나므로 B는 A를 당할 길이 없는 것이다. 물론 스트라이드를 늘릴 때 피칭(Pitching)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훈련이다. 그러나 보폭 230을 5cm 늘려 235로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파월의 기록을 보면 2007년의 9.74를 정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그가 선수로서 좀 더 장수할 수만 있었다면 그의 타고난 좋은 체격조건을 최대로 살려 9.52의 기록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2008년 5월 31일, 우사인 볼트라는 약관 20세의 키다리 청년이 처음 등장하여 100m 사상 최고기록인 9.72를 수립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우선 196cm 신장이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볼트 이전 100m 선수의 이상적 신장은 180에서 아주 커야 190 미만이었다. 따라서 키다리들은 물어볼 것도 없이 으레히 중거리(800m, 1,500m) 선수로 돌려졌던 것이다.
물론 우사인 볼트와 같은 장신 선수가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장신들은 지구 중력을 못 이겨, 달릴 때 전후좌우로 흔들리거나 긴 팔다리를 주체하지 못하였다. 볼트라고 그런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생태학적으로 그의 신체구조는 달리기에 부적합하다. 머리는 뒤로 젖혀지고, 양 어깨는 그의 몸 중심보다 뒤에 와 있고…” 볼트를 키운 코치 밀스의 말이다.
그런데 이 키다리는 어찌 되었건 단거리 왕자가 되었다. 보통 키다리에겐 거추장스럽기만 한 긴 팔다리는 그에겐 브레이크가 아니라 강력한 모터 구실을 하였다. 밀스 코치의 끈질긴 담금질과 볼트의 피나는 훈련이 상식을 뛰어넘고, 물리학 법칙까지도 무색케 한 것이다.
스포츠계의 권위 있는 잡지 <Sports Science & Medicine>은 이런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뉴턴의 물리학 법칙을 들먹일 것도 없이 키다리가 단거리에 불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권위의 <Sports Science>도 정정기사를 써야 할 판이다.
괴물 우사인 볼트의 등장으로 지난 50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육상단거리계에 혁명의 풍운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 귀재의 등장은 중세 암흑기를 연 르네상스와도 같이 육상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참조 : 황홀한 경주 100m: 올림피아슈타디온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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